라이프펜님의 글을 읽으니 우선 반가웠다.
라이프펜님의 글 주제와 관련해서 내가 보탤 수 있는 이야기가 있어서 트랙백도 걸어보았다.
먼저 이와 관련하여 내가 노무현 대통령님께 직접 들었던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2009년 3월28일, 나는 주식동호회 회원들을 이끌고 봉하마을에 자원봉사를 갔었다.
장군차 밭을 가꾸는 일이었는데, 자봉이 끝난 후 대통령님은 우리 일행을 사저로 이끄셨다.
처음 들어간 사저에서 대통령님은 장군차를 대접하면서 여러가지 말씀을 하셨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부자시민에 관한 것이다.


대통령님은 영국의 민주주의 역사를 말씀하셨다.
프랑스가 피의 혁명이었다면 영국은 소리없는 혁명이었다. 피를 거의 흘리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바로 오늘날 <젠틀맨 Gentleman>이라 일컬어지는 <젠트리 Gentry>라는 계층의 존재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젠트리는 귀족가문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막대한 토지를 보유하거나 법률, 금융 등을 주름잡던 계층이다.
18세기 영국사회는 경제적, 사회적으로 보아서 크게 <귀족-젠트리-평민>으로 나누어지는 사회였다.
영국 역시 빈부격차, 신분차별, 의사결정 배제 등에 대한 불만은 프랑스와 다름 없었다.
결국 <갈등의 관리 혹은 조정>의 문제로 귀결된다.
프랑스는 사회적, 경제적 갈등을 관리하는 주체도 없었고, 조정할 주체도 없었다. 그래서 피를 불러왔다.
반면 영국에서는 젠트리가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했다.
귀족들의 양보를 이끌어냈다. 그리고 이를 통해 평민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리며 점진적인 개혁을 추동해냈다.
마르크스의 시각이나, 오늘날 자칭 진보주의자들 시각에는 아마도 <쁘띠브르주아의 기만책>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사회의 갈등을 관리하는 것에 대한 대책이 없는 사람들이다.
어쨌든 젠트리는 지속적으로 귀족과 평민이라는 계층 사이에서 갈등을 해소하는 역할을 했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피의 혁명이 없었던 것이다.
노대통령님은 이날 사저에서 영국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에서 젠트리라는 계층의 중요성을 언급하셨고,
한국 사회에도 영국의 젠트리와 같은 계층이 나타나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게 바로 <부자시민>이다.
구체적으로는, 10억원을 벌면 각자의 고향으로 내려가서
5억원은 자신의 생활기반으로, 나머지 5억원은 고향에 투자해서 살기좋은 마을을 만들어보라고 하셨다.
당신이 직접 시범을 보여주시겠다는 말씀도 하셨다.
그것이 바로 봉하마을 가꾸기 사업이었다.
장군차밭 조성, 화포천 살리기, 봉화산 생태조성, 봉하오리쌀 재배 등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시민>의 개념에 대해 잠깐 언급해야겠다.
<부자시민>은 그냥 부자가 아니다. <부자시민>이다. 왜 굳이 <부자시민>이라고 했을까?
<시민>은 그냥 <개인>이 아니다.
공동체의 문제에 관심을 갖는 개인이 바로 시민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는 과거에 비해 두터운 중산층이 생겨났다.
그리고 벤처기업가들을 비롯한, 규모가 작지만 탄탄한 회사를 거느린 사람들도 많아졌다.
공정한 경쟁이 바탕된다면 충분히 자신의 능력으로 부자가 될 수 있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이들이 단순한 <개인>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과 큰부자들의 탐욕을 억제하거나 대항하거나 양보를 이끌어내는 <시민>으로 확장된다면 충분히 영국의 젠트리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님이 임기중에 마지막으로 외부에 강연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2007년 10월18일 벤처기업가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었다.
<진보적 시민민주주의를 제안합니다>
목차만이라도 훓어보시길 권한다.
<목차> ■ 국가와 시장의 관계 ■ 국가와 시장, 시민사회의 역사 ■ 새로운 조류-신자유주의 vs 사회투자국가 ■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 기업하기 좋은 나라관련 동영상 보기 ■ 사회적 자본이 풍부한 사회 ■ 기업하기 좋은 나라와 민주주의 ■ 사람 사는 세상 |
이 강연에서 대통령님이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셨는지는 다음을 참조해주시기 바란다. 강연 내용의 일부이다.
오늘 제가 여러분께 꼭 말씀을 드리고자 청하다시피해서 초청을 받은 것은 나름대로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장의 역할이 뭐냐’ 하는데 대해서 그동안에 많은 논란도 있었고 역사적으로 변천도 있었지만,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시장을 주도하는 세력이 세상을 주도한다, 그것은 아마 앞으로도 거의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겁입니다.이런 시장을 주도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냐, 특권·반칙·독점·우월적 지위, 이런 기득권을 가지고 성공하고 또 앞으로도 이와 같은 기득권을 계속 주장하는 사람들, 그리고 세상은 생존경쟁의 원리에 따라 돌아가는 것이고 양육강식의 세상이다, 그러므로 강자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거기에 시민들은, 소비자는 따라와야 된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만일에 시장을 주도한다면 우리 사회가 역시 그런 사회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좀 더 다른 생각, 스스로 노력하고 연구하고 혁신하고 그래서 창의적 기술로써 시장에서 당당하게 경쟁하고 성공하는 사람들, 그리고 오늘의 시장만이 아니라 내일의 시장, 오늘의 사회만이 아니라 내일의 사회에서도 계속 경쟁력을 가져갈 수 있는 나라, 이것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시장을 주도하면 그 사회가 또 달라질 것입니다.
제가 후보시절에 어느 강연의 자리에 가서 ‘신주류’라는 개념을 말한 일이 있습니다. 말이 쉽지 않고 관심도 별로 없는 어휘라서 주목을 끌지 못했습니다만 저는 우리사회에 신주류가 나타나야 된다, 등장해야 된다, 그 신주류는 시장의 신주류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신주류가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된다. 지금 세상도 뭐 그런대로 괜찮지만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고, 미래에 대한 많은 불안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고 밝은 미래를 우리에게 약속할 수 있는 그런 우리사회의 신주류는 거듭 말씀드리지만 시장에서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들께 그런 기대를 가지고 오늘 저는 이 자리에 섰습니다.
왜 대통령님께서 벤처기업가들을 불러놓고 진보적 시민민주주의를 제안하셨는지 조금은 이해에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우리 스스로도 부자시민이 되어야겠다.
그러나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부자들을 시민으로 추동해내는 일이라 하겠다.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교수의 경우 충분히 시민의 영역으로 들어온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몇 몇 사람의 뛰어난 시민의식도 중요하지만,
안철수와 비슷한 사람들, 즉 그 계층이 <시민의식>을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결국 그들 스스로 자각하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그들이 <부자>로 머물지 않고 <부자시민>으로 진화할 수 있도록 추동해내는 그 무엇이 필요하지 않을까?
대통령님이 살아 계셨다면 아마도 부자들을 대상으로 많은 강연을 하셨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각종 증세정책이나 비전2080같은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먹고 살만한 사람들이 앞장서줘야 하기 때문이다.
대통령님 강연의 핵심 메시지는 이것이었다.
"부자들이여, 시민이 되자"
왜 한국에는 부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한나라당 같은 정당만 있고,
부자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정당은 없는가?
왜 민주당은 <중산층과 서민>만 언급하고 <부자>는 배제하는걸까?
강금원 회장님같은 사람들이 더 많을 수 있지 않을까?
어쩌자고 이렇게 편이 나뉘어져서 갈등을 관리하고 조정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구도가 되었을까?
고민해야 한다.
막연한 부에 대한 거부감 따위의 감정을 앞세우는 수준을 극복해야 한다.
포퓰리즘을 경계해야 한다.
<중산층과 서민, 그리고 부자>가 함께 할 수 있는 정당이 필요하다.
그 이전에 시민사회 영역에서의 노력도 필요하다.
부자들을 시민으로 이끌어내는 노력 말이다.
물론 우리 스스로 부자가 되는 것도 중요하다.
"부자들이여, 시민이 되자"

